규칙 없음 - 조쉬의 책 읽기
자율과 책임 문화의 교과서 <규칙 없음>
기업에게 '자율과 책임'이라는 선택지를 주는 책
자율과 책임, 수평적 조직문화를 지향하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인덴트 또한 '무제한 재택, 휴가'와 같은 자율과 책임을 대표하는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이는 단순히 복지 차원에서 만들어진 정책은 아니며 구성원들도 그렇게 체감하진 않는 것 같다.
실제로 책의 넷플릭스 사례와 더불어 인덴트 팀원들도 재택근무와 휴가 사용량에 있어 다른 회사와 큰 차이를 보이진 않고 있다. 오히려 리모트 근무시에도 적극적인 소통과 업무 공유가 이뤄질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자율과 책임'에 기반한 기업문화를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너무 극단적이며 특히 한국 기업들이 적용하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나는 '규칙없음'의 다음 독자가 될 수 사람에게 뒷 부분을 먼저 읽을 것을 권장하고 싶다.
책의 공동저자인 에린 메이어의 '컬처 맵'을 통해 우리가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어야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정해야할 사실, '피드백은 기분 나쁜 게 맞다'
'인재밀도'와 더불어 이 책에서는 피드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조용한 피드백을 넘어서서 훨씬 직설적이고 많은 양의 피드백이 주어지도록 권장하고 있다.
심지어 강연중인 사람에게 바로 손을 들어 '당신의 강연 내용은 모순되어 있고 청중들이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라는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남긴 것을 우수한 사례로 꼽는다.
하지만 당시엔 불쾌함을 느끼더라도 나중엔 그 피드백이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건전한 피드백 문화를 위해 넷플릭스가 강조하는 4A 원칙은 이렇다.
1. Aim to assist
도움을 주겠다는 선의에서 출발할 것, 단순히 '하지마라'라는 말보단 '이렇게 하면 이런 이득이 있다'라는 면을 이야기 하라
2. Actionable
현실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대안을 언급할 것, 그렇지 않으면 일방적인 비판 또는 비난이 될 수 있다.
3. Appreciate
인간은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 변명 또는 방어적 반응은 피드백 문화가 자리잡지 못하게 한다. 피드백에 대한 감사표시를 할 것
4. Accept or Discard
피드백의 수용여부는 받는 사람이 정한다. 양쪽 모두 이 사실에 대해 인지할 것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 이야기하듯 '지적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전에는 피드백에 기분 나빠하는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당장은 기분 나쁘지만 지나고 나면 도움이 되는 것, 피드백은 근력 운동 같은 것이다.
경비에 대한 단 하나의 원칙은 '회사에 이익이 되도록 하라'
반년 정도 경비 사용 품의와 지출처리에 대해 굉장히 많은 서류 절차를 요구하는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하루는 마케팅에 필요한 디자인 툴을 구매해야 했는데 한 달 사용료 5만원도 안되는 툴에 대해 내부 설득과 품의를 거치기 위해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써야했다. 사실 이 시점에서 툴을 사용하는 목적으로 서류에 기재한 '업무시간 효율화'는 이미 글러먹었다.
넷플릭스는 경비 사용 규정을 없애고 자율적으로 팀원들이 결제처리를 하도록 했다. 나는 '거긴 훌륭한 팀원들만 있어서 악용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라는 전개를 예상했지만 틀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기상천외한 목적과 이유로 회사의 돈을 탕진한 사례들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다.
복잡한 지출 증빙 처리로 업무 속도를 늦출 것인지, 불확실한 개인의 도덕성에 맡길 것인지에 대한 기로에서 넷플릭스는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넷플릭스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처리하라"
중요한 미팅을 앞둔 담당자가 컨디션 조절을 위해 퍼스트클래스 항공권을 이용하는 것은 OK, 외부 업체 시연을 위해 고급 TV를 결제하는 것도 OK, 하지만 외부 미팅 담당자와 고급 와인을 즐기는 것은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개인의 판단에 의존한다는 것은 바뀌지 않지만, 법인카드를 쓰기 전에 위의 문장에 대해 한번쯤 고민하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다.
'자율과 책임'은 만능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보자면, 가장 중요한 내용을 마지막 파트에적어두었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듯이 '자율과 책임'은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키워드가 아니다. 심지어 저자들도 넷플릭스의 모든 면이 '자율과 책임'에 따른 룰로 구성된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창의성을 추구하는 직무에서 '자율과 책임'은 업무속도와 성과를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절차가 훨씬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내 성추행에 대한 규정', '회원 개인정보 취급', '내부 직원과 기업간의 법적 문제'와 같이 실패가 용서되지 않거나 안전함이 1순위인 업무에 있어 자율과 책임은 독이 된다.
회사가 취급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이러한 성향이 강하다면, 기업 문화 형성에 있어서도 어느정도 보수적인 방향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별로 다른 문화도 고려해야한다. 아래 컬처 맵을 확인해보자. 이는 단순히 한국이 '꼰대 문화'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그림은 아니다.
오늘날까지의 한국의 성장공식과 넷플릭스의 방향성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만 적절히 각색(Adapt)할 수 있단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소위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직설적인 소통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국만 하더라도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 사람들의 문화와 성격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들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의 구성원들은 언제든지 외국 클라이언트 및 팀원들과 소통할 준비를 갖춰야만 한다.
일반론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진 않지만, 각 국가별로 어떤 소통방식과 문화적 특성을 가지는지는 반드시 알아야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다.
총평 : 창의적인 기업 문화를 위한 '자율과 책임'의 교과서
최근 SNL의 MZ오피스를 비롯하여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의 업무 가치관 차이를 보여주는 콘텐츠들이 흥미를 끌고 있다.
가장 재밌는 포인트는 '업무시간에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문제'에 대해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토론하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회사가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성격, 어떤 직무인지, 업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책임을 지는 지에 따라 이것은 얼마든지 답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 아닐까?
기업문화는 기본적으로 회사의 방향성을 정하는 리더들의 주도하에 모든 구성원들의 행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거의 대부분이 절차 중심으로 이뤄지던 한국 사회에서 '자율과 책임'이 녹아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각 방식이 가지는 장단점과 특성, 무엇보다도 목적을 이해하고 대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부러 '자율과 책임'의 극단적인 부분을 강조하여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런 방법도 있다. 실행할 지에 대한 결정과 방식은 당신들에게 맡긴다"
오늘 날의 넷플릭스를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으로 만들어준 자율과 책임에 대한 조직문화를 소개하는 책
창의적인 프로덕트와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하는 스타트업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